그라나다 여행 알함브라 궁전을 추억하다 part3 그리움이 물드는 곳
감동의 그라나다 알함브라 궁전을 추억하며 오늘도 여행기를 이어갑니다. 스페인 알함브라 궁전 투어는 사진의 양도 많은 편이고, 기록해야 할 내용도 많아서 3편으로 나눠서 글을 적어봅니다. 알함브라 궁전의 꽃이라 불리는 헤네랄리페의 아름다운정원, 그라나다 시내와 알바이신 지구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벨라탑에 이어서 알함브라 궁전의 핵심이자 이슬람문화의 숨결을 물씬 느낄 수 있는 나스르 궁전 투어까지 열심히 기록을 해보고 있습니다.
(*기존 티스토리 블로그 콘텐츠를 옮겨오고 있습니다. 메뉴를 포함한 가격은 최신 정보로 업로드되고 있습니다. 참고 부탁드립니다.)
스페인 알함브라 궁전 III 목차
1. 모카라베스 방
2. 아벤세라헤스의 방
3. 두 자매의 방
4. 왕의 방
5. 사자의 중정
6. 왕의 목욕탕
7. 카를로스 5세의 방
8. 왕비의 규방
9. 란다라하 중정
10. 카를로스 5세 궁전
그라나다는 스페인 최후의 이슬람 왕국이 있던 곳이며, 그들의 마지막 왕궁은 알함브라 궁전이었습니다. 기독교들의 포위 속에서도 알함브라 요새의 철벽 같은 수비 능력을 믿고 보압딜 왕은 몇 달을 버텨내지만, 이미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국력이 약해져 있는 상태였고, 항복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었습니다. 아름다운 알함브라 궁전을 빼앗기고 북아프리카로 쫒겨 가던 보압딜은 몇 번씩이나 뒤를 돌아보며 눈물을 흘렸다고합니다.
그는 “그라나다를 잃는 것 보다 알함브라 궁전을 다시 보지 못하는 것이 더 슬프다”는 말을 남겼다고 합니다. 자신이 태어나고 자라 다스리던 왕국을 고스란히 넘겨주고 쫒겨나는 그 심정이 어떠했을지 짐작하게 합니다. 시에라네바다 산맥을 넘던 보압딜의 마지막으로 돌아보며 눈물 짓던 언덕은 ‘무어인의 마지막 한숨’이라 불린다고 합니다. 알함브라 궁전에는 스페인 화가 마누엘 고메스가 그린 <알함브라를 떠나는 보압딜 가족>은 그의 마지막 모습을 담은 그림을 볼 수 있습니다. 위치는 카를로스 5세 궁전 2층에 있는 미술관(Museo de Bellas Artes Granada)입니다.
나스르 궁전에는 곳곳에는 여러 기호와 이슬람식 문양, 아름다운 타일 장식들이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이슬람은 인체를 형상화해 우상처럼 떠받드는 것을 철저히 금하고 있습니다. 대신 문자나 식물줄기, 꽃잎 등을 모티브로 한 기하학적 무늬로 환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아라베스크 무늬는 곧 그들에게는 신의 기호와 같은 것이었습니다.
모카라베스 방
Sala de los mocarabes
모카라베란 용어는 멀리서 봤을 때 마치 석회 동굴에서 볼 수 있는 고드름 모양의 돌이 잔뜩 매달린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장식 기법을 말한다고 합니다. 모카라베스의 방은 원래 화려한 모카라베가 천장을 뒤덮고 있었는데 화약고 폭발로 천장이 주저 앉았다고 합니다. 그때의 화려한 방이 아닌 이름만 남아있는 이 방이 너무나 아쉽게 느껴집니다. 그래도 사자의 궁전에 남아있는 왕의방, 두 자매의 방, 아벤세라헤스의 방에서 이 양식의 형태를 볼 수 있었습니다.
아벤세라헤스의 방
Sala de los Abencerrajes
보기에는 아름다운 이방은 나스르 왕조 당시 막강한 권세를 누리던 아벤세라헤스 가문의 젊은이 36명을 참살했던 방이라고 합니다. 그리하여 방의 이름도 가문의 이름인 ‘아벤세라헤스 의 방’이라 붙여졌다고 합니다. 당시 얼마나 끔찍했는지. 온 궁전 안에 피비린내가 나고 사자의 분수 입에서 피까지 흘러나왔다고 합니다. 이들이 이러한 끔직한 죽임을 당한건 여러 설이 있습니다.
우선, 가문의 젊은이가 왕의 후궁과 사랑을 나누었다는 것이고, 또 하나의 설은 아벤세라헤스 가문이 역모에 연루되어 몰살당한 것이라고 합니다. 아벤세라헤스의 방 바닥에는 불그스름한데 몰살 달시 수십 명의 핏자국이라는 얘기도 전해져 온다고 합니다. 이 방에 들어서면 바닥을 볼 새도 없이 온통 천장으로 시선이 갑니다.
이곳은 전설과 무관하게 정말 아름다운 곳이었습니다. 천장은 현란한 모카라베 장식과 8개의 꼭짓점을 가진 별 모양으로 되어있습니다. 면마다 창문이 달려있어 빛이 창을 통해 들어오면 환상적인 조명 효과를 내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별이 쏟아져 내릴 것만 같은 아름다운 방에 그러한 끔찍한 살육이 벌어졌다는게 믿기지 않았습니다.
두 자매의 방
Sala de las Dos Hermanas
사자의 중정에서 바라볼 때 이곳은 북쪽에 있는 방입니다. 이곳의 이름도 어떻게 붙은 건지 여러 설이 있습니다. 하나는 왕의 총애를 받던 두 후궁이 자매처럼 사이좋게 지냈다는 이야기와 이 방 가운데 바닥에 놓인 커다란 대리석 두 장을 의인화 하여 그렇게 부른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사자의 궁은 그 어느 방보다 정교하고 화려한 것 같습니다. 이 방의 모카라베 장식도 눈이 부실 정도로 화려했었습니다. 두 자매 방의 천장은 아벤세라헤스 방의 천장과 비슷하게 생겨서 헷갈릴수 도 있지만 자세히 보면 모양이 다릅니다. 두 자매의 방의 경우 팔각형의 도형 안에 모카라베가 석회동굴처럼 겹쳐 올라가며 둥굴게 형성되어 있습니다.
왕의 방
Sala de los Reyes
중정을 둘러싸고 있는 주변 건물 중 동쪽에 있는 왕의 방입니다. 이곳은 왕의 방 일부만 담아온 사진입니다. 보수 공사중으로 다는 둘러 보지 못했습니다. 얼핏 보면 천장이 높기 때문에 무카르나스 양식의 특징이 보이지 않을 수 있으나, 좀 더 확대 해서 본다면 무수히 많은 작은 벽감들이 겹겹이 쌓인 형태였습니다. (모카라베 양식,무카르나스 양식은 작은 벽감들을 중첩하여 장식하는 기법을 말합니다.) 왕의 방을 지나 사자의 중정으로 향했습니다.
사자의 중정
Patio de los Leones
사자의 중정이란 이름은 이 사자의 분수 때문에 얻어진 이름입니다. 무함마드 5세의 명으로 지어진 이 중정은 한가운데에 연못을 대신하는 분수가 있고, 주변을 124개의 대리석 기둥으로 이루어진 회랑이 둘러 싸고 있습니다. 사자의 분수는 중앙의 수반에 물이 담겨 있고, 그 물은 사자의 입을 통해 뿜어져 나옵니다.
이 물은 다시 중정을 둘러 싼 네개의 방에 물을 공급하는 역할을 하는 수로로 흘러갑니다. 또한 사자 분수는 시계 역할도 했다고 합니다. 12마리의 사자상에서 1시면 사집 입에서 하나의 분수가 2시면 2개의 분수가 물을 뿜어낸 방식이었다고 합니다.
왕의 목욕탕
Banos Reales
왕의 목욕탕은 아라야네스 중정에서 사자의 궁전으로 나가다 보면 입구가 보입니다. 이슬람교도들에게 목욕은 매주 중요한 일이었다고 합니다. 그들은 하루에 다섯 번씩 알라에게 기도를 해야 하는데, 기도를 할 때마다 몸과 마음을 정결하게 해야 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목욕탕 지붕에는 별 모양의 작은 구멍들이 뚫려 있습니다. 이곳은 빛을 받아들이는 조명창이면서 환기창으로 목욕탕의 수증기를 배출하는 역할을 한다고 합니다.
소카를로스 5세의 방
Apartments of Charles V
카를로스 5세의 방에 들어서면 워싱턴 어빙이 집필한 곳이라는 표지판이 보입니다. 이곳은 카를로스 5세가 그라나다로 신혼여행을 왔을 때, 이교도의 방에서 묵는 걸 꺼려 급히 만든 신혼방이라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이슬람식 장식이 배제된 굉장히 담백한 방이었습니다. 그러나 이곳은 카를로스 5세 때문이 아니라, 워싱턴 어빙이 <알함브라 이야기>를 쓴곳이라고 하여 더 유명해졌습니다. 그래서 이 표지판이 걸려 있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워싱턴 어빙의 소설
<알함브라 이야기>
무어인들은 이 아름다운 궁전을 만들었다면, 이 궁전을 널리 알린 사람은 바로 수필가이자 전기 작가이며 소설가인 워싱턴 어빙입니다. 알함브라 궁전은 이슬람이 물러난 후 스페인 왕실의 아름다운 휴식처가 되어주었지만 나폴레옹에게 훠둘리면서 방치되기 시작했습니다. 1800년대를 전후해 오랫동안 방치된 궁전은 집시와 부랑자들의 소굴로 전락한 적도 있었다고 합니다.
1820년대 후반에 워싱턴 어빙은 방치되어있던 이곳에 머물면서 궁에 얽힌 전설과 자신이 본 알함브라를 차곡차곡 기록해 나아가기 시작했고 1832년<알함브라 이야기>를 출간하게 됩니다. 이 소설로 세상밖에 나온 알함브라는 복원을 거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 되었습니다. 워싱턴 어빙이 알함브라에 끼친 영향과 공은 크다고 할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왕비의 규방
Tocador de la Reina
왕비의 규방에서 내려다 본 알바이신 지구 입니다. 왕비의 규방은 카를로스 5세 방을 나와 린다라하 중정으로 가다 보면 보입니다. 폐쇄적인 구조의 나스르 궁전 전각 중에서 가장 개방적인 구조를 가진 왕비의 규방은 왕비가 옷을 갈아입거나, 화장을 하는 왕비의 사생활이 이루어지는 공간이었을 것이라고 합니다. 나스르 궁전의 모든 곳들이 하나같이 저마다의 사연이 있다는 것이 신비롭고 지루할 틈도 없이 다녔던 것 같습니다.
란다라하 중정
그들의 낙원
란다라하 중정은 두 자매의 방 북쪽으로 난 창문을 통해 보이던, 아담한 정원이었습니다. 하지만 너무나 평온하고 아름다운 곳이었습니다. 푸른색이 돋보이는 란다라하 중정에 아랍어로 된 비석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고합니다.
“ 이 얼마나 아름다운 정원인가! 땅 위 꽃들이 하늘의 별들과 겨루는 곳!
수정 같은 물이 가득 찬 저 설화석고 수반은 세상 무엇에 비할 수 있을까?
구름 한 점 없는 하늘 가운데 빛나는 꽉 찬 보름달 말고는 아무것도 비할 수가 없네.”
잠시 쉬어가기 위해 내려왔습니다. 산타 마리아 교회 사이로 햇살이 따듯했던 12월 알함브라 궁전이었습니다. 알함브라 궁전 투어도 거의 마무리가 되어갑니다. 산타마리아 교외 앞 정원도 너무나 아름다운 곳이었습니다. 겨울에 스페인을 갔지만 이곳은 가을에 가까운 계절이었고, 그 덕분에 알록달록 황금물결이 넘실 되는 단풍이 물든 알함브라 궁전을 만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산타마리아 교회 앞 파르탈 정원을 지나 귀부인의 탑 쪽으로 내려오면 쉬어갈 수 있는 공간이 있었습니다. 귀부인의 탑과 야자수 그리고 너무나 맑았던 스페인 그라나다의 하늘은 이곳에 머는 내내 행복지수를 올려주는 느낌입니다.
귀부인의 탑 주변에는 여유로이 풍경을 즐기는 여행자들, 해맑은 미소로 뛰어 놀던 아이들, 한가로이 산책을 하는 노부부들 모두 편히 쉴 수 있는 공간들이 있었습니다. 잠시 휴식을 취하고 카를로스 5세 궁전으로 향했습니다.
알함브라 궁전의
이방인
카를로스 5세 궁전
카를로스 5세 궁전 외관은 정사각형이었는데, 내부로 들어가면 원형인 특이한 구조였습니다. 카를로스 5세가 이 궁전을 건설하라고 했지만 그의 생전에 공사가 마무리 되는 못했다고 합니다. 여러 사정이 있었지만, 이미 그 즈음 스페인은 차츰 몰락이 길을 걷게 되었고, 군사적으로, 경제적으로 점점 쇠퇴하다 보니 이 건물의 완공에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고 합니다. 궁전 내부로 들어가기 전에 외관을 좀 더 살펴보고 들어갔습니다.
궁전 외벽에는 무슨 고리같이 있었습니다. 청동 고리에는 사자와 독수리 등을 조각해 놓아서 장식 같은 게 아닐까 했습니다. 하지만 이건 마차를 끌고 온 말들을 매어두는 장치였습니다. 이렇게 미적 감각이 뛰어난 말고리는 처음 보는 것 같습니다.
카를로스 5세궁전 내부로 들어오면 정사각형의 외관과 다르게 원형 모양이라 신기했습니다. 이 건물의 1층과 2층이 서로다른 의도를 가지고 설계되었다고 합니다. 기둥 양식을 보면 1층은 도라이식(Doric), 2층은 이오니아식(Ionic Order)으로 1층은 우람한 남성적인 느낌, 2층은 섬세한 여성적인 느낌을 준다고 합니다. 사실 이곳은 내부보다 외부에서 보면 좀 더 확연히 구별이 된다고 합니다.
카를로스 5세의 기둥
‘정의의 문’ 근처에 카를로스 5세의 기둥이 있습니다. 분수대 형태로 페드로 마추카의 작품이라고 합니다. 카를로스 5세의 기둥은 그라나다를 상징하는 석류와 카를로스 5세를 상징하는 쌍두 독수리 그리고 헤라클레스의 기둥, 부르고뉴의 십자가가 조각되어 있습니다.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예술적인 공간들이 곳곳에 있어서 마지막까지 먼 곳에서 온 이방인 발길을 잡는 것 같습니다.
그리움이 물드는 곳
안달루시아 여행 마무리
카를로스 5세 궁전 앞에서 마지막으로 알함브라 궁전에서의 사진을 담아보고, 추억을 기록해 봅니다. 애절하게 사랑스러웠던 안달루시아 지방의 모든 곳이 지금도 눈에 선한 것 처럼 선명하기만 합니다. 꿈에서나 그리워했던 이슬람 건축의 백미이자 슬프도록 아름다웠던 알함브라 궁전과의 조우는 그야말로 제 생에 가장 큰 기쁨이었으며, 보물 같은 곳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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